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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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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물건 낙찰 받지 않고. 더 돈이 되는 방법은?

유치권콜롬보 | 2023.05.02 10:35 | 신고

경매물건 낙찰 받지 않고. 더 돈이 되는 방법은?

 

몇 년 전에 함안군 칠서면 태곡리의 과수원 10,600평이 최저매각가격 5300만 원으로경매에 나왔다.

등기부를 열람했더니 근저당권설정도 5500만으로 채권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었다.

현장 답사를 갔더니, 10,600평 전부가 과수원인데, 맨 아래쪽은 배를 심은 과수원이었고, 그 위에는 복숭아와 자두가 심어져 있었으며, 또 그 위로는 단감이 수백그루 심어진 단감 밭이고 맨 윗부분은 산 전체에 밤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다 좋지만 한 가지 흠이 도로가 겨우 경운기 한 대 지나갈 정도라는 것이었고, 과수원 한 복판으로 보여 지는 중앙 부분에 약 600평을 잡아먹는 묘가 4기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이 묘지가 나에게는 이 토지를 수월하게 살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의 묘를 소중하게 생각하므로, 비록 망하여 선산이 경매 처분이 된다고 하여도 조상의 묘가 있는 땅은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고, 나는 이 마음을 이용하기로 했다.

토지의 소유자는 대구에 살고 있었다.

나는 대구에 가서 토지 소유자를 만나서, 10,600평 토지 중에서 묘지 600평을 떼어 주고 경매신청한 채권자의 빚을 갚아줄 터이니, 토지를 나에게 넘기라고 설득하였더니 선선히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는 서울에 살고 잇는 사람이라고 하며 채권자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함안에서는 칠원읍 칠서면 칠북면이 가장 산업이 발전하고 공장이 많은 지역이고, 교통도 좋으며 인구도 늘어가는 지역이었다.

과수원을 들러본 결과, 첫 경매에 가격이 치솟아, 입찰법정에서는 낙찰 받기가 쉽지 않은 물건으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경매는 아예 신경 쓸 것도 없이 서울의 채권자를 빨리 내려오게 하여, 근저당권을 말소하면 임의경매 사건은 바로 취하될 것이니, 경매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토지의 채권자에게 연락하여, 근저당권설정 등기필증과 주민등록초본, 신분증, 도장을 가지고 부산에 오면 같이 차를 타고 함안등기소에 근저당권을 말소 접수하면서 근저당권 설정한 돈을 받아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며칠 뒤인 경매하는 날, 예상한대로 5500만 원에 진해 사람이 이렇게 큰 과수원을 낙찰 받았다.

며칠 동안은 좋은 물건을 싸게 낙찰 받아서 기분이 좋을 것이다.

며칠 후에는 근저당권설정으로 인하여 경매개시결정이 되었으나, 근저당권이 없어졌으므로, 경매개시결정은 기각되고, 경매개시결정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매각허가결정을 내릴 수 없으므로, 매각허가 결정은 취소될 것이다.

매각허가결정이 떨어지기도 전에, 서울에서 채권자가 부산으로 내려와서 같이 함안등기소 앞 법무사에서 근저당권설정해지신청서를 작성하여 접수시키는 것을 확인하였고, 채권자는 돈을 받아서 기분 좋게 서울로 올라갔다.

경매로 낙찰 받은 사람이나, 나나 똑 같이 5500만 원을 주고, 이 과수원을 샀지만 나는 묘지 600평을 전 소유자에게 떼어 주었다.

남의 조상이 네 분이나 누워계신 묘지를 포함하여 샀다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 남의 묘는 잘 지켜야 하는 것이니 쓸 수도 없는 땅을 지켜주기만 해야 하는 것이고, 땅에는 분묘 4기가 존재한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땅을 사면서 묘지 600평을 떼어주면 내 땅에는 묘지가 하나도 없는 깔끔한 땅이 되는 것이 아닌가?

묘가 있는 땅을 사는 것이 유리할까?

묘가 없는 땅을 사는 것이 나중에 팔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상 과수원을 10,000평이나 샀지만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그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가 농아고등학교를 나온 손자를 데리고 농사를 지어셨는데 하필 내가 땅을 사자 손자가 대도시 공장에 취업이 되어서 가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농사를 도저히 지을 수가 없다고 손을 들고 말았다.

아무리 동네를 찾아 다녀도 농사 지을 사람은 전혀 없었고, 그냥 버려두었더니 재 넘어 사는 외팔이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농사를 짓는 다면서 오락가락하였지만, 그 몸으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것이고, 열리는 과일을 팔기에만 바빴을 것이다.

2년 지났을 때 쯤 부동산이라고 젊은 청년이 이 땅을 사겠다고 찾아왔다.

땅을 안내할 터이니 가서 보자고 하였으나, 벌써 다 보았다고 계약을 하자고 한다.

별로 말도 없이 23000만 원에 계약을 하고 중개인 청년은 돌아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깨름직함이 남아있었지만, 일단 돈이 많이 남아서 좋았으니 그런 잡다한 기분도 금방 잊었다.

그리고도 약 2년이 지났는데, 땅을 팔은 분이 찾아와서 600평으로는 묘 터가 좁다고 땅을 조금 더 달라고 하였지만, 나는 일단 땅을 팔았으니 나에게는 더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권한이 없고, 그 분에게 땅을 산 사람을 만나 보겠다고 했다.

이제는 남의 일이 되어버린 토지 문제지만, 땅을 사신 분을 만나 보기로 약속을 했으니 당연히 만나는 봐야지 했지만 어디 사는 누가 땅을 샀는지에 대하여서는 도통 기억에 없어서 등기부등본을 발급 받아서 거기에 나오는 주소로 찾아갔다.

땅을 사신 분은 여자 의사선생님인데, 땅에 대해서 하는 얘기가 내 땅 얘기가 아니고 남이 땅 얘기 같았다.

직감적으로 이분이 샀다고 생각하는 과수원은 내가 팔은 과수원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1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 아무 탈은 없기도 하다.